사실 비슷비슷한 컨셉을 가진 영화들의 개봉이 줄을 이었던 고로, [파라노말 액티비티]에 대해 그다지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포영화광으로써 사람들 입에 오르는 작품을 지나칠 수 없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극장을 찾았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가 괜찮더군요. 일단 입장을 밝혀보자면 저는 이 영화를 지지합니다. 꽤 재미있었고, 새해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난 공포영화로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영화는 낮과 밤에 따라 카메라의 앵글이나 시점이 다릅니다. 대개 낮을 배경으로 할 때는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영화 역시 핸드헬드 기법에 의해 촬영되었고, 이 장면들은 다소 어지럽고 산만합니다. 하지만 낮 장면은 몰입해서 볼만한 장면들이라기보다는 상황설정에 도움을 주는 장면들로, 다소 산만하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들이라 이입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반면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총력이 집중되는 밤 장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반드시 관객이 효과적으로 집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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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장면과는 달리 밤 장면에서 카메라는 삼각대 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즉, 고정 쇼트로 촬영되었다는 얘기죠. 동시에 누구도 카메라를 들여다 보고 있는 이가 없으므로, 카메라의 시점은 온전히 관객의 시점이 됩니다. 즉, 영화가 강조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핸드헬드가 어쩌니, 1인칭 카메라(그런데 이게 누구를 중심으로 1인칭이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가 어쩌니, 하는 설명들과는 차별성을 가지게 됩니다. 아마도 제가 이 영화에 호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카메라가 상당히 정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일종의 취향인데 사실 저는 멀미날 정도로 정신 없는 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효과적으로 사용되면 뭔가 긴박한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는걸 모르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어쩐지 관객의 정서적 이입을 차단하는 느낌이 있어요.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기란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런 촬영방식이 트래킹 쇼트에 비해 돈이 덜 먹힌다는걸 모르지는 않지만서도) 어쨌거나 배경이 변하지 않고 인물만 움직이기 때문에(고정쇼트도 돈 안들기는 마찬가지인듯), 관객은 흡사 틀린그림찾기를 하듯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관객의 상상력이 개입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정적인 카메라의 장점이에요. (경험상 여기에서 오히려 지루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꽤 많더군요)

낮과 밤을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영화는 일종의 리듬감을 형성합니다. 낮에 긴장이 완화되고, 밤에는 반대로 조금씩 팽팽해진달까.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긴장해야 한다면, 영화를 보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 될테죠.) 게다가 자극을 점증적으로 키워가며 결말로 달려가는 밤 장면들 역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합니다. 설명하기가 곤란한데 굳이 설명하자면 "으 - - 으 - - 으 - 따아 - 으 - 따아아, 으." 요런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될까요?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그런 템포 위에서 (물론 관객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지만) 충분할 정도의 섬찟함 혹은 즐거움을 전달하는데는 성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불 움직이는 장면 나오고부터는 꽤나 몰입되더라구요. 그러니 공포영화 본연의 임무는 달성했다는 얘기 되겠습니다. 지루하다는 전반부도 그들의 대화에 섞인 엷은 유머 때문인지, 딱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등장시켜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있어서도 영화는 꽤나 똑똑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 놓인 카메라의 시간이 초 단위로 흐르도록 함으로써, 이제 조만간 변화가 있을테니 대비들 하세요라고 정보를 주는 겁니다. 이건 일종의 장르적인 약속입니다. 지금이 중요하니 집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죠. (리얼을 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것에 다가가는 설정이나, 영화의 리듬감 등등에서, 저는 이 영화가 대단히 장르적으로 연출되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극단적으로 불타는 위지보드 같은 설정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죠.) 만약 이러한 정보 없이 잠자고 있는 자를 보여준다면, 관객이 놀랄 타이밍을 인지하기 어려워서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을거에요. 만약 관객이 영화에서 집중이 떨어졌다면 제대로 된 반응을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렵겠지요.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는 상당한 말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극장판의 엔딩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타인의 손때가 묻다보니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오리지널이 미세하게 더 낫다는 생각은 하게 되지만(youtube를 통해 오리지널 엔딩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앞부분과 연속해서 본 것이 아니다보니 몰입이 덜 되어 지루한 느낌도 들기는 하더랍니다. 즉, 공정한 비교는 아니죠. 어쨌거나 멀티엔딩 덕분에 DVD 사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두고두고 볼 것 아니라면 충분히 즐거운 마무리이기도 했구요.

2010. 1. Argento.


Paranormal Activity, Oren Peli. U.S.A. (2007)




※ 덧. 에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할만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덧 1. [아바타]의 흥행을 두고 또 진부한 산업정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보다는 사실 이런 영화를 여러 편(물론 어렵겠지만) 만드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금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작품은 아직 못 본 [이웃집 좀비]에요, 조만간 개봉한다니까 시간들 내보시길) 딱히 돈 벌어다줄 수단으로 영화산업을 바라보는 그 시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동의한다고 해도 이 쪽이 훨씬 현실성 높은거 아닌가요. 길게 봅시다. 높으신 분들. 그리고 기왕 지원하더라도 저예산 독립영화 쪽을 지원해주면 욕이라도 덜 먹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덧 2. 영화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 제 정신이라서 악을 느끼고 있는거라면, 그래서 무서운거라면, 차라리 내가 악과 동화해버리면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죠. 저는 나이를 먹어간는다는 것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편해지는 과정 아닌가라는, 압도적 무력함에 지배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맥락에서 이제 괜찮다고 말하던 대사, 상당히 섬찟하게 들리더라구요.

덧 3. 개인적으로 저는 여자가 가만히 서 있는 장면들이 가장 좋았습니다. 가만히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꼼짝하지 않은 채, 자고 있는 애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을 생각해보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무섭습니다만. 더 섬찟했던 것은 필름을 배속으로 감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어떤 느낌 때문이었어요. 사람은 가만히 서 있어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걸 빨리 감다보니 비현실적으로 흔들흔들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