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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연쇄살인마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공포영화 관객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던 80년대가 지나면서, 그들이 주는 직접적 폭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연쇄살인마가 나오되 미스테리와 인물들의 내면, 과학수사와 같은 소재들을 좀 더 부각시킨 스릴러들이 인기를 얻었다.1 물론 그 선두주자는 [양들의 침묵]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카피캣]은 아마도 그 자장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카피캣]은 상당히 아류작 정도로 치부된 채 저평가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2

하지만 내 생각에 [카피캣]은 이런 부류의 작품들 중에서는 썩 괜찮은 편에 속하는 작품인 것 같다. 게다가 아주 재미있다.3 물론 이런 애정 어린 평가에는 사소한 이유도 있다. 모방범이라는 익숙한단어보다 왠지 있어 보이는 카피캣이라는 서구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광장공포증 같은 희귀한 증상과 호흡이 곤란하면 빵봉투를 뒤집어 쓰고 숨을 쉬기도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것과 같은.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4 이 작품은 꽤 괜찮다. 총으로 죽일까 칼로 죽일까를 물어보다가 그냥 둘 다 하지 뭐라며 동시에 베고 쏘는 첫번째 살인마의 느낌도 제법 섬뜩하고, 주인공이 강의에서 언급했던 연쇄살인마의 순서대로 모방범죄를 저지르며 거대한 살인극을 계획하는 두번째 살인마도 나쁘지 않았다. 훗날 [쏘우]로 명성을 얻게 되는 '죽은줄 알았지' 류의 시체 트릭도 이미 선보이고 있었으며, 게다가 두 명의 여인 홀리헌터와 시고니위버의 연기가 명성에 모자라지 않는데다가, 존 아미엘의 연출도 깔끔하니 괜찮은 작품이라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게다가 영화가 끝나도 영화의 공포만큼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려 두 명의 연쇄살인마에게 생명을 위협당한다. 첫 번째 살인마는 영화 첫 장면에서 수감된 자이며, 두 번째 살인마는 러닝타임 내내 설쳐대는 자다. 그러니 첫 번째 살인마가 감옥에 가 있고, 두 번째 살인마가 죽어 버렸다면, 죽음에 대한 구체적 위협은 끝나야 한다. 물론 트라우마는 남는 법이고, 그녀의 직업상 위협은 항상 존재한다지만. 그러나 영화가 끝난다고 해도 본질적 공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커진다. 영화 후반부 즈음 두 번째 살인마는 감옥 안 살인마의 제자임이 암시되고, 그러한 찬동자는 수도 없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 실은 본격적인 시작도 못한 셈이다.

만약 그가 감옥 안에 있지 않고 사형을 당했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생사여부와는 관계없이 잡히는 순간 연쇄살인마는 전설이 된다. 그러니 그가 조언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차피 흉내낼 대상이란 도처에 깔려있다. 지금부터는 제자들의 세상이며, 복사본의 세상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은 연쇄살인마 따위를 흉내내는 것일까? 그들이 다른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에? 더러운 세상이라서? 글쎄,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건 한 가지, 연쇄살인마만큼 유명한 자들도 별로 없다는 사실. 미디어의 호들갑도 분명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 인정하기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명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법이고.

걱정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해자로 만들어줄께. 그럼 난 뭐가 될까. 잭 더 리퍼에 대한 책이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책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를 너는 알고 있니? - [카피캣] 중에서


2010. 2. Argento.


Copycat, John Amiel. U.S.A. (1995)


. 글을 쓰면서 너무 괄호를 남발하니 보기 안 좋은 것 같아서 주석을 사용해보았습니다. (사실 제 글 괄호빼면 굉장히 짧습니다. 워낙 잡소리가 많아서요.) 보기 괜찮은가 모르겠네요. 제 맘에는 듭니다. 주석 부분이 너무 따닥따닥 붙은 것 같은 느낌도 있기는 하지만서도.




  1. 사실 슬래셔 영화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캐릭터의 힘이었을게다. 10년간을 호령했던 영화들은 시시해졌고, 그러한 호러팬들을 공략한 것이 적당히 무서운 스릴러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들도 살해씬의 시각적 가학성이 묻어날 경우, 그냥 공포영화로 분류해버리고는 한다. 전에도 말했듯이 난 장르구분은 잘 못한다. 어쨌거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스릴러의 인기는 다시 슬래셔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미스테리를 강화한 뉴슬래셔(과장스러운 칭호이기는 하지만) [스크림]이다. 그리고 [스크림] 이후 슬래셔물은 얼마간 다시금 탄력을 받았다.
  2. 어쩌면 너무 깔끔해서 저평가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는, 그저 개인적 느낌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3. 솔직히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본콜렉터]가 무지하게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전문가와 여경의 협력체제와 모방범 연쇄살인마의 이야기인 [본콜렉터]는 [카피캣]을 자연스레 떠올리도록 만든다. 물론 [본콜렉터]도 장점은 있다. 그 시절 안젤리나 졸리가 엄청나게 이뻤었으니까.
  4. 말도 안되는 소리임은 알고 있다. 어찌 인간이 객관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객관적인 척 해보았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