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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발매된 풀치의 [시티 오브 리빙데드] 영국판. 딱 보는 순간 어머, 어머하고 놀랐다. 패키지와 서플 모두 하루 뒤 발매된 미국판을 압도, [비욘드] 틴케이스 이후 가장 훌륭하게 출시된 풀치 작품인 것 같다. 간만에 해외 풀치 팬들이 달아올랐다. 코드프리라서 우리나라 기기에서도 무난하게 돌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유일한 단점은 영어자막이 없다는 점.

하지만 그 유일한 단점 때문에 그 다음 날 발매된 미국판으로 결국 구매하게 되었다. (조만간 날아올 예정, 고민한 것만도 장장 2주간이다.) 읽는건 무리가 없는데 듣기가 전혀 안되는 엉터리 영어공부의 폐혜 때문. 몇 번 봐서 자막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경험상 자막으로 보면 "아, 그랬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거든.
어쨌거나,,, 상대적으로 미국판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초라해보이는게 사실. 딱 본편 디스크 한 장만 미국판으로 갈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마구 마구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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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왜 내가 영어자막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한글자막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년 동안이나. 솔직히 DP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정발과 해외구매의 논쟁, 나도 거기 한 번 가담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애당초 내가 좋아하는 애들은, 정발 꿈조차도 못 꾼다.



덧 1. 시각적으로 매우 끔찍한 영화이니 혹시 뽀대만 보고 덜컥 질렀다가 후회하지 말 것.

덧 2. 영국판(애로우 비디오)이나 미국판(블루언더그라운드)이 같은 소스를 사용한다는 루머가 있었고, 화질이나 음질은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DVDBeaver.com의 간접비교를 보니 미국판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다행이다. 아마도 앵커베이의 색감에 익숙해진 탓이라고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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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매니아의 입장에서 볼 때, [퍼버전 스토리]는 풀치가 처음으로 지알로의 장르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지알로와 호러와의 강한 연계를 생각해보자면, 고어의 왕(고어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누구에게 주어야 한다면, 풀치보다 적임자는 떠오르지 않는다)으로서의 시작점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69년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70년대 중반까지 세 편의 지알로물을 더 찍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점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각적 효과에 탐닉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2년 뒤의 일이고, 이 작품과는 무관하다. 풀치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주 조금도 가학적이지 않다.

통상 지알로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퍼버전 스토리]는 전형적인 지알로물도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의 본질은 우선적으로는 치정극(혹은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일단의 지알로가 수사망을 피하면서 계속되는 연쇄살인마의 살해 행각에 초점을 맞춘다고 보면, 이 작품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늘어놓는 것은 부적절한 관계들, 타락과 관능, 그리고 무기력한 느낌들이다. 나아가 작품은 이태리 선배의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히치콕의 스타일에 가까워 보인다.1 죽은 아내와 쏙 닮은 여인을 쫓다가 누명을 쓰게 된다는 스토리가 [현기증]을 떠올리는 구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의 영화가 완벽하게 계산된 연출(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장악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더욱 그러하다. 풀치는 자신이 원하는 사소한 디테일들, 인물들을 리드미컬한 줌과 때로 과다하게 사용되기도 하는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에게 적절히 환기시키며 영화를 끌어간다. 일부 장면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으로부터의 영향도 느껴진다.2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인과 관계를 가지는 장면. 남자는 성행위 중 계속하여 죽은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이것이 묘한 네크로필리아적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인이 아닌 남자가 시체처럼 느껴지는 장면에 이르면, 그 느낌은 훨씬 더 비틀려지고 기괴해진다.

사형제도에 대한 온건한 반대를 드러내는 후반부의 교차편집이 다소 늘어지게 느껴질 수도 있고, 하늘의 심판으로 귀결되는 엔딩3이 조금은 순진해 보이는 구석이 없는건 아니지만, 정교하게 구축된 트릭들은 상당한 정도의 즐거움을 자아낸다. 풀치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감상해볼만한 작품이다. 후에 풀치의 다른 지알로 [Don't Tortue A Duckling]에 출연하기도 하는, 그러나 아마도 [세브린느]로 더 유명할 장 소렐이 주연을 맡아 알듯 말듯한 표정들로 일관하며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장 소렐은 풀치의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수동적 남성 캐릭터를 맡고 있다.

2009. 2. Argento.


Una sull'altra, Lucio Fulci. Italy/France/Spain. 1969.
a.k.a One on top of the other(U.S.A, U.K.),
      Perversion Story(France)



덧 1. 원래 미국에서는 [One on top of the other]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다고 하나, 이 작품의 본질은 결국 치정극이기 때문에 [Perversion Story]로 수정되어 DVD 출시되었습니다. 같은 년도에 개봉된 풀치의 다른 작품 [Beatrice Cenci]가 영국에서는 [Perversion Story]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혼선을 피하기 위해 이 작품을 언급할 때는 보통 [One on top of the other]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DVD에는 별 다른 서플은 없으나, 영어자막 선택이 가능하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별도의 디스크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질은 괜찮은 편입니다.

덧 2. 대충 이런 내용의 영화입니다. 꽤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병으로 누워 지내는 아내를 둔 한 남자가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중에, 갑자기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잽싸게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운채로 죽어 있는 아내를 보지만, 그가 바람을 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그가 침상에 다가가지 못하게 합니다. 밝혀진 그녀의 사인은 간호사의 부재로 인한 적절하지 못한 투약 때문이었죠. 어쨌거나 그녀의 장례가 끝난 후,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엄청난 보험금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떤 전화를 받고 들린 스트립 클럽에서, 자신의 아내와 똑같이 닮은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아내와 동일인일까요, 아닐까요.4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살인으로 수사망을 좁혀가는 경찰과,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작극을 벌인 아내의 가능성을 품은 보험조사관. 사라진 간호사와, 수사에 혼선을 가져오는 도플갱어같은 인물. 대체 어떤 일이, 무엇 때문에, 벌어진 것일까요?



  1. 그의 영화가 선정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히치콕보다는 브라이언 드 팔마 스타일이라고 말하는게 느낌상으로는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풀치는 드 팔마보다는 일찍 이 장르에 뛰어들었으니 그로부터 받은 영향력은 없었다는게 옳을 듯 싶구요. 어쨌거나 풀치는 탁월한 기술자라는 측면에서 드 팔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유사점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설명하도록 할께요.
  2. 폭력적이고 성적인 태도를 취하며 피사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여성사진가의 모습은 [욕망]에서의 데이빗 헤밍스의 모습과 겹쳐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60년대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이태리 수사물에서는 사진을 확대함으로써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것 역시 [욕망]의 영향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추후에 더 얘기하겠지만, 풀치는 운명 앞에 무력하다는 식의 명제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이킥]은 작품 전체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라는 운명론에 입각해 설계된 작품이며, 그의 전성기무렵 좀비물들 역시 종말로 운명지워진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 답을 이야기하자면 아내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컬러렌즈했다고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마도 어떤 드라마가 떠오를겁니다.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정보를 흘립니다. 하지만 그녀는 왜 죽은 척 해야만 했던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또 궁금증을 자극하죠. 다른 이로 행동하는 의도에는 또 다른 트릭이 숨겨져 있답니다. 낭비되는 캐릭터도 없고, 아주 깔끔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