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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4 불신지옥 (18)

ⓒ타이거픽처스/쇼박스/CJ창업투자 외

[불신지옥]은 참으로 괜찮았다. 미스테리 스릴러 정도로 표현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사라진 동생과 연이은 자살 소동을 연계시키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끌어냄으로써 스크린에 관심을 잡아둔다. 그러나 그러한 궁금증을 조목조목 풀어주는 작품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종교를 유사과학적인 무언가(김도훈의 처럼)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작업은 자칫하면 유치해지기 쉽상이다. 대신 영화는 이런 영역도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끔 강제하고 넘어간다. 물론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불신지옥]이 보다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따로 있다.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 부분에 있어 이용주 감독은 맥을 제대로 짚었다. 믿음의 본질이란 복을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복신앙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그런데 만약 기독교에 있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기복이 주가 된다면, 기독교란 무속과 다를 이유가 전혀 없다. 성령과 귀신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 영화가 취하는 태도, 즉 특정 종교를 비하하지 않는 태도란 점잖다기보다는 적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이기도 한데다가, 결국은 종교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인거니까.

사회파 호러영화의 성격이 짙지만 선배 사회드라마들과 비교할 때 장르적 연출이 깔끔하다는 것은 [불신지옥]의 또 다른 장점이다. 최소한 뭔가 있을 것 같은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긴장감을 끌어낼 줄은 안다. 솔직히 남상미가 집에만 들어가면 긴장감이 일더라. 단적인 예로 윗층에서 추락하는 사람을 목격하는 장면은 [4인용 식탁]에서도 만났던 것이지만, [불신지옥]의 그것은 리드미컬한 다단계 충격을 주는 등 훨씬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식으로 연출되었다. 물론 이러한 효과들의 힘보다 훨씬 강한 것은 이야기의 힘, 이야기가 추구하는 메시지로부터 도래하는 그것이다. 비과학적 상황들 속에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려고 했던 경찰이 무너지는 그 순간(극장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와서 당혹스러웠다만)이 주는 감정만큼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으니까.

이 장면은 우리에게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이는, 그 광신의 세계가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간절히 바람에도 스스로는 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간직한 이들에게는, 가끔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에 기적이란 이름을 붙이고 매달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그런 사실을.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신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위라는 아킬레스건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인간이란 별로 없다. 경찰서에서 던진 무당의 한 마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네 근데 못 살겠네 류의 말은 얄미운 수준을 넘어 악의가 느껴지지만, 인간의 약점을 파고드는 그 멘트보다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놓게 하는 말은 없을게다.  
 
2009. 8. Argento.


덧 1. 조금 더 확장하자면 아무런 근거 없는 믿음을 기치로 달려가고자 하는 작금의 현실 역시 광신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덧 2. 이 작품의 지하실 장면은 어째서인지 [플란다스의 개]가 먼저 떠오른다. 경비아저씨의 분위기도 그렇고(시체가 발견된 장면은 [세븐]틱했는데). 이용주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종종 같이 보이기에 [플란다스의 개]에서 만났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더라.

덧 3. 더불어 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유리창 너머 걸려있는 옷을 잡아낸 그 순간의 이미지가 참 좋았다. 원신연의 [가발]에서 벽에 걸린 가발의 이미지 이후 간만에 느낀 감정이었달까. 그것만으로도 [가발]은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