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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2 [악인], 요시다 유이치 (14)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을 읽었습니다.(간만의 존대말이로군요, 말투를 바꿀까 하다가 왜 그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갑니다) 사실 delius님(전 꾸준히 한 가지 소재로 이야기하는 분을 좋아한답니다)께서 작년의 책이라며 추켜세우신 바람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정말 간만에 읽은 소설이랍니다. 최근에는 경제학서적(국내에 출간된 크루그먼의 책들을 중심으로, 흠흠.)과 공포영화만 오가는 아주 미니멀(?)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악인]은 살인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지만, 어쩌면 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무례함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악은 실체가 모호하지만, 무례함이란 꽤 명확하거든요. 물론 무례가 죽어야 할만큼 큰 죄는 아니에요. 당연하죠. 하지만, 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그가 선과 악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건 이성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에요. 어쨌거나.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만, 인간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기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은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운 것이기도 한데다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어쩔 수 없었다거나 혹은 그 대가를 이미 지불했다고 믿어버리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거든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새, 그 대상이 누구든간에 혹은 실체가 있든 없든간에, 악인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야 자기가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소설에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가서 돈을 뜯어내는 남자가 나오는데, 그의 말이 참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쓸데도 없는 돈을 뜯어낸 이유란, 그렇게 해야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인간 내면의 한 구석을 제대로 찌르고 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쨌거나 이 소설에 추리적 요소랄건 별로 없습니다.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순차적으로 조금씩 까발리고 있기에 전혀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치밀하게 얽어두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그건 작가가 추리에 그닥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느껴져요. 순차적으로 밝혀지는 사건의 정황들이란, 그 정황이 밝혀질 무렵 나오고 있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거든요. [악인]은 꽤 오밀조밀하고 상세하게 주변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됩니다. 몹시 먹먹한 정서의 소설인데다가 누군가는 범인에 대한 '동정'적 시각이라며 작품을 폄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건드리고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은 여인의 아버지가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복수를 계획한다고 그 계획이 진짜 복수까지 이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상대가 그만한 가치도 없다고 생각될 경우에 말이죠.

2009. 3. Arbo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