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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영화잡담(12.3) (22)

1. 모든 비밀을 밝혀주는 교차편집으로부터 시작하여, 총을 들고 달려가는 남자와 그를 맞는 여인이 만들어내는 라스트까지의, [강박관념, Obsession]의 마지막 10분은 정말 봐도봐도 멋있다. 그래서 라스트만 세 번이나 돌려봤다. 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히치콕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먼저 접했다는 것(고전을 폄하했던 치기 때문이었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라고. 적어도 그의 영화를 보면서 히치콕의 다른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을 떠올리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아도 되니까. 브라이언 드 팔마는 분명 히치콕의 공인된 수제자라 일컬어도 그리 오버는 아닐테지만, (초기작을 제외하면) 그는 분명 스승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경지에 도달한 바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이태리 호러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감정적 과잉이 묻어 있었으며, 안토니오니의 [욕망, blow up]에서 모티브를 얻은 [필사의 추적, blow out]을 지나고 나면 영화라는 매체(그것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인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쉬는 동안 드 팔마의 몇 작품들을 보았다. 아마도 국내에 소리소문없이 출시된 [자매들]에 삘을 받았기 때문이겠지만(CC판을 소장하고 있기에 내 물건이 되지는 않았다만). 어쨌거나 유려한 미장센이니 어떠니하며 [팜므파탈]도 추앙받고 있는 듯 하지만, (스릴러에 국한한다면) 나는 딱 [침실의 표적]까지가 좋았던 것 같다.


2. 이 글을 읽고난 후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발레리와 그녀의 이상한 일주일]이라는 작품이었다. 다행히도 mydvdlist에서 중고로 내놓은 분이 계셔서 입수, 영화를 감상했다. 글을 읽은지 반년 동안 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으니, 적어도 원은 풀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영화가 좀 그랬다. 어째서 소수의 매니아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링크한 글에 덧붙일 말은 별로 없다. 할 말이 없는 정도까지라면 괜찮겠는데, 뭐랄까 뒷맛이 묘하게 불쾌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그 이유를 알았다. 솔직히 넌 13세 소녀의 가슴을 보고 싶지라며 끊임없이 조롱당한 기분이었달까? (솔직히 넌 사람 죽는 장면을 보고 싶지라며 끊임없이 조롱하는 류의 공포영화와 뭐가 다른걸까라는 생각에 엄청 고민했다. 그런 영화는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거든. 고민해도 모르겠으니, 답으로 내놓을 것은 취향밖에 없다.)

예전에 선배 한 명이 꽤 심각한 톤으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자신은 한 중학생 여자아이를 필요 이상 마음에 두고 있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네가 나를 비웃을 수 있는 것(사실 나는 비웃지 않았다. 뭔가 평범치 못한 구석을 가진 이들의 피하기 어려운 자기변호의 일종이라고 생각해두자)은, 네가 그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만나지 못한 탓이라고.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 선배의 말은 이해가 간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그 묘한 매력을 가진 소녀의 가슴을 보고 싶다는 생각, 조금 했다. (내가 졌소이다.) 나도 내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니, 너무 비난하지 않기를.


3. [여고괴담]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보고 싶을 때가 있는 편인데(대체로 DVD를 소장하지 못한 작품들이 이렇다), 때마침 Qook VOD에서 보이길래 잽싸게 감상했다. (요즘 Qook VOD, 꽤 애용하고 있다. 덕분에 [지붕뚫고 하이킥]은 원없이 봤다.) [여고괴담]은 많이 봤던 작품이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말보다는,,, 졸업사진에 나온 진주의 이름들 중 하나가 박지성이라거나,,, 아니면 귀신 나온다는 폐건물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박진희가 뒤늦게 그 곳을 찾은 김규리에게 내가 먼저 사용했으니까 미술실로 쓰려면 임대료를 내라고 하는 장면(음 있는 집 딸은 저렇게 경제관념이 있어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든다)에 주의를 기울인다거나,,, 아니 저 안 닮은 석고상을 보면서 어떻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거지 류의 생각을 한다거나 혹은 잠깐 멈춰놓고 커피를 끓여와야 겠다(이나영 때문이다)거나,,, 역시 한국귀신은 너무 착하구나(설득이 통하는 존재다) 등의 엉뚱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어쨌거나 [여고괴담]을 보고 있노라면, 2등이란 참 불쌍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등이면 아주 잘하는건데 말이다. 영화 속의 설정도 그렇지만 일단 극중 2등의 어딘가 결핍된 것 같은 외모부터 안스러운 느낌을 만드는데 공헌한다.) 그 이유는 인간을 좌절케 하는 노력의 한계가 명확히 보여지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는 분명히 있는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가진게 있으니) 마음에 여유도 가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애들과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되면, 어지간히 노력한다고 따라잡을 수 있을까. 종국에 가서 할 수 있는건 흥, 삐뚤어질테다 정도가 아닐까.
뭐, 물론 1등도 고민은 있는거고 교복 입은 애들치고 안 불쌍한 아이들 얼마 없다는걸 모르는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4. "비나이다, 비나이다. [좀비랜드], 국내에서 개봉해주세요. 휴강 공지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보러 갈께요." (물론 농담이니 "어떻게 강사가 저럴 수가."라는 말은 삼가주셨으면 한다.)
imdb의 공포장르 랭킹은 수시로 확인하는데, 관객 호응이 장난이 아니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올해(혹은 올해 처음으로 보게 된) 공포영화들, 그 수에 비해 은근히 괜찮은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영평상의 신인감독상에 이어 청룡상에서 각본상을 차지한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에게도 축하를 전해두고 싶다.  



2009. 12. Argento.


. 이것저것 영화를 보기는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올리지 않다보니 영화를 기억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맘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잡힐듯 말듯한 생각들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실은 [무언의 목격자]에 대한 감상을 적다 포기했다.) 토막글이라도 가끔씩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