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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담(12.3)
1. 모든 비밀을 밝혀주는 교차편집으로부터 시작하여, 총을 들고 달려가는 남자와 그를 맞는 여인이 만들어내는 라스트까지의, [강박관념, Obsession]의 마지막 10분은 정말 봐도봐도 멋있다. 그래서 라스트만 세 번이나 돌려봤다. 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히치콕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먼저 접했다는 것(고전을 폄하했던 치기 때문이었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라고. 적어도 그의 영화를 보면서 히치콕의 다른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을 떠올리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아도 되니까. 브라이언 드 팔마는 분명 히치콕의 공인된 수제자라 일컬어도 그리 오버는 아닐테지만, (초기작을 제외하면) 그는 분명 스승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경지에 도달한 바 있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이태리 호러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감정적 과잉이 묻어 있었으며, 안토니오니의 [욕망, blow up]에서 모티브를 얻은 [필사의 추적, blow out]을 지나고 나면 영화라는 매체(그것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인다.
블로그에 글쓰기를 쉬는 동안 드 팔마의 몇 작품들을 보았다. 아마도 국내에 소리소문없이 출시된 [자매들]에 삘을 받았기 때문이겠지만(CC판을 소장하고 있기에 내 물건이 되지는 않았다만). 어쨌거나 유려한 미장센이니 어떠니하며 [팜므파탈]도 추앙받고 있는 듯 하지만, (스릴러에 국한한다면) 나는 딱 [침실의 표적]까지가 좋았던 것 같다.
2. 이 글을 읽고난 후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발레리와 그녀의 이상한 일주일]이라는 작품이었다. 다행히도 mydvdlist에서 중고로 내놓은 분이 계셔서 입수, 영화를 감상했다. 글을 읽은지 반년 동안 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으니, 적어도 원은 풀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영화가 좀 그랬다. 어째서 소수의 매니아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링크한 글에 덧붙일 말은 별로 없다. 할 말이 없는 정도까지라면 괜찮겠는데, 뭐랄까 뒷맛이 묘하게 불쾌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그 이유를 알았다. 솔직히 넌 13세 소녀의 가슴을 보고 싶지라며 끊임없이 조롱당한 기분이었달까? (솔직히 넌 사람 죽는 장면을 보고 싶지라며 끊임없이 조롱하는 류의 공포영화와 뭐가 다른걸까라는 생각에 엄청 고민했다. 그런 영화는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거든. 고민해도 모르겠으니, 답으로 내놓을 것은 취향밖에 없다.)
예전에 선배 한 명이 꽤 심각한 톤으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자신은 한 중학생 여자아이를 필요 이상 마음에 두고 있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네가 나를 비웃을 수 있는 것(사실 나는 비웃지 않았다. 뭔가 평범치 못한 구석을 가진 이들의 피하기 어려운 자기변호의 일종이라고 생각해두자)은, 네가 그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만나지 못한 탓이라고.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 선배의 말은 이해가 간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그 묘한 매력을 가진 소녀의 가슴을 보고 싶다는 생각, 조금 했다. (내가 졌소이다.) 나도 내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니, 너무 비난하지 않기를.
3. [여고괴담]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보고 싶을 때가 있는 편인데(대체로 DVD를 소장하지 못한 작품들이 이렇다), 때마침 Qook VOD에서 보이길래 잽싸게 감상했다. (요즘 Qook VOD, 꽤 애용하고 있다. 덕분에 [지붕뚫고 하이킥]은 원없이 봤다.) [여고괴담]은 많이 봤던 작품이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말보다는,,, 졸업사진에 나온 진주의 이름들 중 하나가 박지성이라거나,,, 아니면 귀신 나온다는 폐건물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박진희가 뒤늦게 그 곳을 찾은 김규리에게 내가 먼저 사용했으니까 미술실로 쓰려면 임대료를 내라고 하는 장면(음 있는 집 딸은 저렇게 경제관념이 있어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든다)에 주의를 기울인다거나,,, 아니 저 안 닮은 석고상을 보면서 어떻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거지 류의 생각을 한다거나 혹은 잠깐 멈춰놓고 커피를 끓여와야 겠다(이나영 때문이다)거나,,, 역시 한국귀신은 너무 착하구나(설득이 통하는 존재다) 등의 엉뚱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어쨌거나 [여고괴담]을 보고 있노라면, 2등이란 참 불쌍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등이면 아주 잘하는건데 말이다. 영화 속의 설정도 그렇지만 일단 극중 2등의 어딘가 결핍된 것 같은 외모부터 안스러운 느낌을 만드는데 공헌한다.) 그 이유는 인간을 좌절케 하는 노력의 한계가 명확히 보여지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는 분명히 있는 집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가진게 있으니) 마음에 여유도 가진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애들과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되면, 어지간히 노력한다고 따라잡을 수 있을까. 종국에 가서 할 수 있는건 흥, 삐뚤어질테다 정도가 아닐까.
뭐, 물론 1등도 고민은 있는거고 교복 입은 애들치고 안 불쌍한 아이들 얼마 없다는걸 모르는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4. "비나이다, 비나이다. [좀비랜드], 국내에서 개봉해주세요. 휴강 공지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보러 갈께요." (물론 농담이니 "어떻게 강사가 저럴 수가."라는 말은 삼가주셨으면 한다.)
imdb의 공포장르 랭킹은 수시로 확인하는데, 관객 호응이 장난이 아니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올해(혹은 올해 처음으로 보게 된) 공포영화들, 그 수에 비해 은근히 괜찮은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영평상의 신인감독상에 이어 청룡상에서 각본상을 차지한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에게도 축하를 전해두고 싶다.
2009. 12. Argento.
덧. 이것저것 영화를 보기는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올리지 않다보니 영화를 기억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맘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잡힐듯 말듯한 생각들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실은 [무언의 목격자]에 대한 감상을 적다 포기했다.) 토막글이라도 가끔씩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 정작 만든 사람은 별로 의식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까지야..
큐브릭의 "로리타"도 재미나게 보는데요, 뭐. 물론 가슴은 안나오지만..^^;
4. 개봉 소식이 있나요?
콜롬비아는 의외로 국내에서 호러영화 DVD를 즐겨 줄시하는 곳이니 DVD로나마..
안타깝게도 [좀비랜드] 개봉 소식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소식이 좀 느리기는 하지만요.)
DVD 정발 안되면 해외판이라도 가야할 놈으로 정해두었답니다.
많이 바쁜가보네...연말 세미나와 송년회는 어케 얼굴 좀 보도록 하자고. ^^ 수고.
연말의 주말이라,,, 장담을 못하겠네요. 가급적 가고 싶기는 합니다만,,, 조만간 전화 한 번 드릴께요.
오래간만에 댓글 남기네요 ㅎㅎ 잘 지내시는지요?
좀비랜드 저도 기대하고 있는데, 영 소식이 없네요 -0-;;;
네,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꽤 오랫만의 댓글이심에도, 그 후 블로그에 새로 올라온 글이 거의 없다는 것에 반성하고 있습니다.
giantroot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
<강박관념> 정말 잘 만든 작품이죠. 빌모스 지그몬드가 찍은 안개 낀 듯한 영상이 멋졌습니다.
'드 팔마식 <현기증>'이라면서..아무래도 <현기증>이란 무시무시한 작품이 있다보니 평가절하를 많이 받던데 사실 그러기엔 촬영도 잘 된 작품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난 작품이고..<현기증>에 버금가는 버나드 허먼의 무시무시한 스코어도 있는 작품이고. (전 아직도 Argento 님이 말씀하신 공항 장면에서 나오는 스코어 음악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데 OST 발매가 안 됐나봐요.)
<자매들>의 무그 신디사이저 스코어도 그렇지만 허먼이 말년에 전성기 못지않은 전율스러운 영화음악을 많이 남긴 것 같아요.
사실 그 버나드 허먼의 음악이, 히치콕과의 유사점을 더 배가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처럼 촬영도 잘 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무시무시한 스코어도 있답니다.
버나드 허먼은 물론 히치콕과 결별한 후 네임밸류에 비해 커리어 상으로는 뚜렷한 하락세를 겪었지만, [그것은 살아있다]나, [검은 옷을 입은 신부], [택시 드라이버]까지도 결코 모자라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한국귀신(및 한국인 포함)들은..뭐..딱히 한이 풀리지 않아도 적당히 하다가 넘어가주는 경향이 높은 것 같습니다..저항의식이 없다고나 할까요!!^^
한국사람의 정서는 '한'이라고들 하는데, 한국귀신들은 사실 그렇게 처절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픔을 겪어 본 사람들인지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바가 많아서 그런건지.
오랜만에 댓글다는 것 같네요. 잘 지내시지요? ^^
글 잘 읽었습니다. 보니 강박관념이 막 땡기네요. ㅎㅎ 좀비랜드 결국 개봉안하는 걸까요. 제발 좀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은데 말이죠..ㅜㅜ
넵,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오랫만이네요. ^^
[좀비랜드]. DVD는 분명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왠지 꿈에 그칠 것 같네요. 아직까지도 명확한 이야기가 없으니. ㅠㅠ
남편님이 히가시노 게이고를 거의 독파해서 읽을 거리를 찾아 들렸어요. 고백,읽어봐야겠네요.
27인치 애플이 도착했는데 코드프리를 몰라서 아직 DVD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있어요.
일본DVD를 넣으면 홍콩에서 사온 DVD들이 울 것 같고,복잡하네요.집에있는 DVD타이틀을 놔두고 유튜브를 보는 불편함이란.아마 맥이 아니었다면 당나귀를 돌려서 좋은 화질의 영상을 충분히 찾아 냈을 것 같아요.
닌텐도도 정품팩으로 있는 것들마져 결국 웹으로 찾아서 한곳에 몰아서 가지고 다니고 있어요. 정품의 가치란, 요즘은 케이스랑 칼라 설명서정도랄까. 닌텐도위는 더 나빠서 일본산 팩을 읽을 수가 없다네요.
얼마전에 카시오 전자사전 업데이트 소프트웨어를 주문했는데 한국어윈도우에서는 깔리지않는 설정이었어요.배송비까지 십만원이 그냥 날아가서 ,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플스는 어떤가요?블루레이는 코드없나요?
겨울은 조용한 지름의 계절인거 같아요.
[고백] 참 괜찮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아직 저도 다 하지 못한 히가시노 게이고 독파를 하셨군요. 저는 가가형사 시리즈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답니다.
음, 블루레이도 코드가 있습니다. 다만 한,미,일이 같은 코드로 분류되기 때문에 유럽산 영화들의 코드만 확인하시면 된다고 하네요. 아직 유럽산 영화를 사본 일이 없는지라, 그 이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닌텐도나 카시오 전자사전은 더욱이 잘 몰라요. 전 PS3와 샤프 전자사전, 그나마도 업데이트는 거의 안하고 사는지라. ^^
저 역시 수도 없는 할인행사와 하루하루 싸우고 있답니다. 적당히 이기고, 적당히 지면서요. ^^
안녕하세요? 오랜에 댓글 다네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작품들은 특유의 유려한 미장센이 가장 인상적이지만, 감정적 과잉도 이에 못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필사의 추적'에서 절규하던 존 트라볼타가 떠오르네요.)
올 한 해는 거의 영화를 보지 않았네요. ('드래그 미 투 헬'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인 듯...) 예전에는 일년에 천 편 이상 보기도 했었는데
ssabari님, 정말 오랫만이에요. 정말, 반갑습니다. ^^
브라이언 드 팔마는 유려한 미장센과, 최고 수준의 기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사랑하는) 감정적 과잉을 겸비한 감독이었다고 생각해요. 조금 지난 작품들을 보다보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드레스드 투 킬]의 서정적인 도입 음악에 어우러진 악몽씬만 봐도 스타일이 딱 나오잖아요? ^^
올 한 해 많이 바쁘셨나봐요. 저도 예전과 비교하면 영화 보는 편수가 상당히 줄었답니다. 극장 가는건 월례행사가 되었구요. 어쩐지 동지의식이 느껴지네요. ^^;;
고백 읽어볼게요 추천 감사해요.아직까지 아르젠토님은 히가시노게이고를 알게 해준 분,이랍니다.^^
감귤철의 서귀포에서는 아무도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아요.독서의 계절입니다.아파도 다 참으시는가봐요.
nadia님의 본업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군요. 사는 곳까지도. ^^
지금쯤 [고백]을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답글이 참 늦었죠? 채점에 성적이의 신청에 보고서 작성에 저도 꽤 바빴답니다. ㅠㅠ
4. <좀비랜드>는 아직 국내 개봉 일정이 안 잡혀 있더군요. 저도 개봉되면 보려고 하는 작품인데요. 북미에서 흥행에 성공을 했으니 들여올 것 같은데, 내년 여름 시즌 때나 개봉을 시킬까요? 여름 시즌 때도 스크린을 잡기가 힘들테니.. T.T
아무래도 dvd 직행인 것 같습니다. 출시예정리스트에 떴다고 들었어요. ㅠㅠ
아악! 국내에서는 여름 시즌 때나 개봉을 해주려나 했었는데.. DVD로 직행하는군요. T.T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선택적으로 글을 읽어보고 있지만, 가볍게 소비되어야 하는 글들은 아니신 것 같아서 잘 읽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말로 구체적 날짜까지 떠있더군요. 안타깝지만 별 수 없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