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영화나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대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경찰이 커피와 도너츠를 먹고 있는 장면이지요. 기억이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경찰이 아니니 도너츠를 먹으면 안된다는 투의 대사를 던진 코미디 영화도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경찰은 도너츠를 먹어야지 투의 대사도 본 적이 있는 것 같구요. 그럼 정말 경찰은 도너츠를 좋아하는지, 혹은 왜 경찰과 도너츠가 연관되었는지 등의 의문이 발생할 수 있을텐데요. 그 답으로는 대충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첫째, 미국인들은 원래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기 때문에 달달한 도너츠를 많이 먹는다. 경찰이라고 해서 유난히 도너츠를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둘째, 식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간단히 떼우기에 가장 좋은 것이 커피와 도너츠다. 무전 오면 버리고 뛰어가야 한다.

셋째, 무슨 소리냐. 단순히 PPL(제품 간접 광고 : Product Placement)일 뿐이다.

넷째, 점주가 경찰에게 무상으로 커피와 도너츠를 제공했었다. 그래서 도너츠를 먹고 있는 경찰을 목격하는게 원래 흔한 일이었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은 네 번째 가능성인데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경찰은 업무 특성 상 야간 근무를 많이 하는데, (당시에는)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출출해지면 먹을 곳이 없어 갈 데라고는 커피와 도너츠를 파는 곳밖에 없었다는군요. 그래서 경찰의 선택 자체가 심하게 제약되었습니다. 좋지 않아도 그걸 먹어야 한다는거죠. 더불어 그 시간에는 강도들이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업주의 입장에서는 경찰이 자주 매장을 방문하면 방문할수록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이 자신의 가게에 자주 오도록 도너츠를 무상으로 주었다는거에요. 이 행위는 경찰에게나 업주에게나 서로 윈-윈이 되는 행위가 될 수 있었겠죠. 물론 모든 상점이 그러했던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경찰은 커피와 도너츠를 즐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설정이 만들어졌고 지속되어 오고 있다는 겁니다.

저도 군생활을 의경으로 해서(10년 좀 넘은 얘기입니다) 심야시간에 파출소에 종종 나가고는 했는데, 오늘 만든 빵을 내일 팔지 않는 제과점에서 남은 빵을 비닐 봉지 한 가득씩 가져다 주는걸 목격한 적이 몇 차례 있어요. 어차피 버릴 빵을 경찰관에게 주는 것은 제과점 입장에서도 경찰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예로 명동에서 근무하다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와서 오뎅 먹고 가라며 손짓하는 분들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제 돈으로 오뎅을 사먹어도 돈을 안 받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강철중이 노점의 과일을 그냥 공짜로 들고가거나 하는 장면들, 아마 과거에는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을거에요.

물론 이건 과거의 얘기라고 합니다. 커피와 도너츠의 무상제공 환경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어요. 첫째는 작은 유착의 발생입니다. 사람이란 아무리 작은 거라도 받아먹다보면,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게 인지상정이라는거죠. 그래서 가게 밖에 놓인 불법광고물이나 점주의 과속 등을 눈감아준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경찰 내부에서 어떤 것이라도 무료로 받아먹어서는 안된다라는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제가 군에 있을때도 아무 것도 받아먹지말라라고 당부하시는 순경들이 있었어요, 거기에는 경찰의 공권력보다는 대민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는 이미지 변화의 노력도 담겨 있었을지 모르죠) 게다가 과거와 비교할 때 이제 커피나 도너츠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꽤 비싼 일이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점주들도 무상으로 제공하는데 인색해졌답니다. (어제 만든 빵을 할인해서 팔 수 있다고 하면, 경찰에게 주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겠죠. 예를 들다보니 미국이나 우리나 비슷한 구석이 많군요. 사람사는게 다 그런가봅니다. 어쨌거나.)

저는 단 하나의 요인이 작용했다기보다는 (크기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하는데요(다른 요인들도 있을거라 생각하구요), 주워들은 것이니 사실 여부는 잘 모릅니다. 정답을 알고 계신 분 계시면 가르쳐 주세요.


2010. 1. Arg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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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attermedia's me2DAY 2010/01/25 19:45

    형사영화나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대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경찰이 커피와 도너츠를 먹고 있는 장면이지요. 그럼 경찰은 정말 도너츠를 좋아하는 걸까요? 그 답으로는 대충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1. 티리 2010/01/19 20:12

    경찰과 도넛츠라니, 심슨가족의 위검서장이 저절로 떠오르네요 :)

  2. 트래비스 2010/01/20 12:19

    잼있게 읽었습니다. 어떤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넛이 미국인들에게 참 일상화된 식품인건 맞는거같아요. 만화 심슨에서도 심슨이 도넛을 늘 입에 달고 살죠. 드라마에서도 아침에 도넛사서 나눠먹는것도 자주 보이구요.

    • Argento 2010/01/2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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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드라마에서도 꽤 자주 본 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친구들 말로도 커피와 도너츠는 상당히 일상화된 식품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영화로 미국을 접한 저같은 경우는, 도너츠라고 하면 경찰부터 떠오른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3. 비밀방문자 2010/01/21 10:3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Argento 2010/01/21 11:16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시간 되는대로 전화 한 번 드리겠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사은 2010/01/22 00:03

    오, 이거 궁금했어요. 어째서 경찰=도너츠일까? 단 걸 싫어하는 경찰은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선택권의 제약 때문이라니. 상황이 문화 코드를 만든 경우네요.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유통 기한이 임박한/막 지나려 하는 음식을 다 버린다는 거였어요. 이전에는 홈리스에게 나눠주는 등 빈민 구제에 사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식중독이 걸리거나 하면 소송이 들어올 수 있고 위생&안전에 저촉된다고 해서 모두 버리는 걸로 방침이 바뀌었대요. 수업 시간에 이 이야기를 듣고 애들이 다 말도 안된다고 입을 모았죠.

    사실 요즘 서구 사회는 그냥 '상식'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문서화/체제화하는 게 많이 심해졌어요. 체크리스트 같은 것도 작성해야 해요. ('실험 전 실험실에 걸려 넘어질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라' 하는 사항이라던가...) 그게 심해지면서 인정이 좀 더 각박해진 듯한 생각도 들어요. 음.

    • Argento 2010/01/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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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나눠주지 못하고 버린다는 얘기, 뭔가 좀 아이러니하네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현실이 그러니까.

      마지막 문단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문서화/체제화도 좋지만, 인간을 너무 기계적으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조금 서글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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