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 [무언의 목격자]는 끝없이 재생산되었던 싸구려 영화들처럼 시작한다. 카메라는 희생자의 뒤를 쫓으며, 흉기를 선택하는 살인마 시점을 잡아주면서 [할로윈]의 궤적을 쫓아간다. 그러고는 살인마를 보고 놀라 침대에 쓰러진 여인을 칼로 세 차례 난자한다.
아직 여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 넘치는 살인마는 한 쪽 구석의 의자에 가서 앉아, 자리를 잡고 담배를 말며 그녀의 마지막 몸짓을 바라본다. 초조하고 긴장된 눈빛으로, 그리고 천하에 제일 가는 볼거리를 보듯 흐뭇하게, 그녀를 응시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살인마의 표정과 여인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은근히 섬찟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의 한 쪽에서 쑥 하고 손이 나와 살인마에게 담배불을 붙여준다. 어라? 공범이 있었단 말야? 전혀 인식할 수 없었던 공범의 가능성에 놀라는 것도 잠시. 또다시 화면의 한 쪽에서 손이 쑥 나오더니 이번에는 불을 붙여준 이에게 술병을 내민다. 뭐지? 당황스럽다. 그리고 또 사람이 들어선다. 이제 눈치를 챌 수 있다.
멀지 않아 실은 이것이 영화 촬영장이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칼에 찔린 여인의 바보 같은 오버액션에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관객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졌다. 살인마의 웃음은 아까처럼 오싹하지 않다. 우리는 허구 속에서도 사실과 연기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무언의 목격자]의 오프닝(어딘가 [필사의 추적]의 오프닝과 유사한 느낌이 묻어난다)은 재치가 넘쳐난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기자기한 재미와는 무관하게, 이 장면은 [떼시스] 마지막 장면과 대구를 이르는 장면이라고 할 수도 있을게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과 겹쳐지는 영화의 스탭들.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드는 사람도 생기는 시장원리. [무언의 목격자]도 [떼시스]와 마찬가지로 스너프라는 다소 극단적 소재를 끌어온다.
물론 타인의 죽음을 보며 웃음 짓는 그들(관객도 포함한다)의 태도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들은 이 죽음이 현실이 아님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의 연기가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 것이냐고.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지금 보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가정만 추가한다면, 현실과 허구의 구분은 그리 명확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실은 [무언의 목격자]는 이런 질문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 수사관 한 명은 스너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사람이 죽음을 직감했을 때 나타나는 그 어떤 표정이 있다며 그 끔찍함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한 번만 봐도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듯 말한다. 그는 연기와 실제를 구분할 수 있음을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타인의 죽음을 엄청나게 많이 목격했을 잔혹한 갱단조차도, 실제 죽음과 연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영화의 결말을 보라.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연기가 죽여주게 실감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영화적 연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왜? 그것은 그들이 영화(허구)를 보고 있다는 자각, 혹은 스너프(실제)를 보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즉, [무언의 목격자]에 따르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만 제거한다면, 현실과 연기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영화 속 허구는 생각보다 더 힘이 센 것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무언의 목격자]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현실을 보듯 대하라는 주장도 내비치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사실 그녀는 말 못하는 이라기보다는 부단히 말하고자 하는 이다. 그녀는 훌륭한 통역사(어차피 외국이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매한가지다)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녀의 어눌한 증언에 경찰들은 귀를 기울인다.
영화 속의 여인이 목격한 것이 결국 여인의 목숨까지 위협했듯, 공포영화 속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들의 적지 않은 수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우리는 말 못하는 영화 속 여인보다 처지가 낫다는 것이다. 말 못 하는 이도 저러할진대, 말 할 수 있는 이라면 더욱 떠들어대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초반부에 비해 중반부의 밀도가 떨어진다고는 하나, [무언의 목격자]는 상당히 괜찮은 영화다. 물론 이 편견덩어리 리뷰를 깡그리 무시한다고 해도, 꽤 재미있는 영화니 아직도 못 본 이가 있다면 감상해볼만한 가치 정도는 있을게다.
2010. 1. Arg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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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이 영화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어요. 입술을 꼬매는 'MUTE'.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포스터인데 리뷰 읽고 나니 왠지 (낮에 불을 많이 켜놓고 여러 명하고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막 생깁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rgento님. :)
실은 저도 그 포스터 덕분에 아주 잔인한 영화를 기대했다가는, 실망 꽤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혈기 넘치던 시절, 공포영화에 대한 모든 평가는 잔인하냐/그렇지 않으냐의 두 부류 뿐이었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에요. 사은님. 정말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