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 [무언의 목격자]는 끝없이 재생산되었던 싸구려 영화들처럼 시작한다. 카메라는 희생자의 뒤를 쫓으며, 흉기를 선택하는 살인마 시점을 잡아주면서 [할로윈]의 궤적을 쫓아간다. 그러고는 살인마를 보고 놀라 침대에 쓰러진 여인을 칼로 세 차례 난자한다.

아직 여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 넘치는 살인마는 한 쪽 구석의 의자에 가서 앉아, 자리를 잡고 담배를 말며 그녀의 마지막 몸짓을 바라본다. 초조하고 긴장된 눈빛으로, 그리고 천하에 제일 가는 볼거리를 보듯 흐뭇하게, 그녀를 응시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살인마의 표정과 여인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은근히 섬찟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의 한 쪽에서 쑥 하고 손이 나와 살인마에게 담배불을 붙여준다. 어라? 공범이 있었단 말야? 전혀 인식할 수 없었던 공범의 가능성에 놀라는 것도 잠시. 또다시 화면의 한 쪽에서 손이 쑥 나오더니 이번에는 불을 붙여준 이에게 술병을 내민다. 뭐지? 당황스럽다. 그리고 또 사람이 들어선다. 이제 눈치를 챌 수 있다.

멀지 않아 실은 이것이 영화 촬영장이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칼에 찔린 여인의 바보 같은 오버액션에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관객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졌다. 살인마의 웃음은 아까처럼 오싹하지 않다. 우리는 허구 속에서도 사실과 연기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무언의 목격자]의 오프닝(어딘가 [필사의 추적]의 오프닝과 유사한 느낌이 묻어난다)은 재치가 넘쳐난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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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은 2010/01/11 20:41

    학교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이 영화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어요. 입술을 꼬매는 'MUTE'.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포스터인데 리뷰 읽고 나니 왠지 (낮에 불을 많이 켜놓고 여러 명하고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막 생깁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rgento님. :)

    • Argento 2010/01/11 23:29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실은 저도 그 포스터 덕분에 아주 잔인한 영화를 기대했다가는, 실망 꽤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혈기 넘치던 시절, 공포영화에 대한 모든 평가는 잔인하냐/그렇지 않으냐의 두 부류 뿐이었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에요. 사은님. 정말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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