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받아들이라 하네 - 체인질링 지난블로그(일반영화)

[체인질링]은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이야기에 있어 결코 흔하지 않은 영화다. 아이가 유괴된 후부터가 아니라 유괴되었다던 아이가 돌아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던 초반부부터, 이제 그만 끝났으면 했음에도 계속하여 이어지던 결말부까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는 것처럼 보였던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이 잔혹한 영화에 진력까지 느끼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혹은 어느 정도까지 [체인질링]은 분명 잔혹한 영화 - 아마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다. 자신의 아이를 찾고자 했던 여인의 말이 옳았음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 그녀의 아이를 죽였다는 이의 고백 뿐이라니! 천국에 가겠다며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사실에 대해 입을 닫은 (또한 지옥에 가야 마땅할 것처럼 느껴지는) 사형수의 뻔뻔한 태도도,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알고자 하는 사연을 풀어줄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절망감도, 얼핏 보면 시간과는 무관하게 하염없이 계속될 그녀의 싸움의 막막함까지도, 영화가 그녀에게 허락한 잔혹한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게 잔인하게 다가왔던 까닭은, 그녀의 싸움이란 온전히 그녀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하며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내기도 하고 그녀의 겉보기의 성공에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그 본질이란 여인이 목사에게 말했듯 - 나는 당신의 사역 따위는 관심 없어요 - 부패경찰을 타도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라는 훨씬 개인적이고 소박한 것이다. 따라서 경찰청장이 물러나든, 시장이 물러나든, 고통받았던 여인들이 해방되든 그것은 그녀에게는 아마도 부가적인 성과에 불과한거라 생각한다. 그게 얼마나 큰 성과인지 몰라서 하는 말도 아니고, 목사의 정의를 의심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아이가 살아 있는 한 그녀의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의를 처벌한 후 목사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자식도 그걸 바라고 있을거라고. 이 말은 공교롭게도 경찰이 그녀에게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 이 두 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한 말이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또한 비슷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 의미를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이제 내가 할 것은 다 했으니 나는 손을 떼겠소. 이제 가능성 없어보이는 싸움은 그만 하시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불의를 처벌한 순간 목사의 싸움은 끝났다. 잘못된 아이를 찾아준 순간 경찰의 싸움이 끝난 것처럼. 물론 이 둘도 같은 것은 아니다. 경찰은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를 고통으로 몰아넣었지만, 목사의 필요는 그녀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까지 그녀를 도와주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그 재판 이후 뭐가 달라진게 있는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녀의 아이는 여전히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그 아이는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은 아직 해야할 일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잔혹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독이 그녀에게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어느 밤에 생긴 일]을 허락해주어 좋았다. 아이의 명예를 살려주어 좋았고,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어 좋았다. 아이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모성에게, 자신의 싸움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호기를 가진 여인에게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끝모를 고통이 아닌 삶의 희망이자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체인질링]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있어서나, 이야기를 풀어내고 감정을 터뜨리는 연출에 있어서나 공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마저 설득력 있으니 이 영화는 걸작이라 부를만한 대부분의 것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결론은 꼭 보라는 것.

2009. 1. Arborday.

.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그 모양새에 있어 판이하게 다르지만, 저는 [체인질링]을 보면서 [밀양]을 떠올렸답니다. 단, [밀양]이 어리석고 약한 한 여인이 세상을 마주하기까지를 그려낸 이야기라면, [체인질링]은 그녀보다 훨씬 강한 여인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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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2009/01/28 14:10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체인질링"은 "미스틱 리버"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이오지마" 연작 같은 그의 최신작을 두고 보자면 범작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말마따다 그의 범작은 왠만한 감독들의 걸작 수준이란 것이 나름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1920년대 말 LA에서 벌어졌던 믿을 수 없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화국에서 일하던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는 어느날 그녀의 9살 난 아들 월터가 ...... more

  • 체인질링 _ 원치 않는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현실 2009/01/28 14:30 #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원치 않는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현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2008년작 은 개봉전 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래 안젤리나 졸리가 다시 한번 아카데미를 두드려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였지만, 무엇보다 등으로 노년에 더욱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more

  • 모두가 받아들이라 하네 - 체인질링 2009/01/29 12:18 #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게 잔인하게 다가왔던 까닭은, 그녀의 싸움이란 온전히 그녀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하며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내기도 하고 그녀의 겉보기의 성공에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그 본질이란 여인이 목사에게 말했듯 - 나는 당신의 사역 따위는 관심 없어요 - 부패경찰을 타도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거창한 목표가 아..... more

  • 체인질링 (Changeling) 2009/01/30 21:17 #

    '위대한 배우, 그리고 위대한 감독!'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의 연출작들을 보면 드라마의 완성도가 그야말로 완벽했었습니다. 특히 내러티브를 섬세하며 탄탄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요. 1930년생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이제 80세에 접어들고 있는데, 여전히 그가 연출해내는 드라마의 밀도 높은 완성도는 퍼펙트합니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 more

  • 체인질링 -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 2009/02/16 10:17 #

    사지가 절단나고, 미치광이 살인범이 활개치고, 화면이 피바다가 되어야만 공포영화는 아니다. 실종된 아이를 찾았다 싶더니, 왠 듣보잡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당신 아이니 무조건 맡아서 키우란다. 엄마인 당사자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경찰은 눈하나 깜짝 안한다. 오히려 공권력에 빌붙은 의사까지 동원해 엄마를 정신이상자로 몰고가려 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벌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 아닌가. 이런일이 '실제로' ...... more

덧글

  • 천용희 2009/01/28 14:00 # 답글

    음...날 잡아 극장으로 가야할 듯....

    동림선생이라면 영접의 가치가....
  • ArborDay 2009/01/29 09:17 #

    아직도 안 가고 뭐하셨단 말입니까!!
  • 천용희 2009/01/29 23:09 #

    이 동네에서 이거 상영하는 곳까지 갈려면 날 잡고 최소 30분이상은 걸려야...-_-;;;
  • 요사리안 2009/01/28 14:30 # 답글

    저도 밀양을 떠올렸어요. 이창동의 인물들을 조롱(?)하는 듯한 시선과 이스트우드의 시선을 비교하니 감동이 배가 되더군요.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진을 빼는 영화이기도 하죠.
  • ArborDay 2009/01/29 09:19 #

    요사리안님 - 제가 알고 또 저를 아는 그 분 맞으시죠? - 의 말씀처럼 두 영화는 어쩐지 비슷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한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진을 빼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 아쉬타카 2009/01/28 14:31 # 삭제 답글

    정말 동림선생의 공력이 느껴지더군요. 자칫 신파로 오해할 수 있는 소재를 이렇게 무겁고 진중하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더라구요.
  • ArborDay 2009/01/29 09:20 #

    정말이지 흔하디 흔한 소재를 이렇게 다룰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공력이 묻어나고 말이죠.
  • 유리도끼 2009/01/28 15:34 # 답글

    하지만 그 희망 때문에 가슴이 더욱 아팠고 갑갑했어요ㅠ
  • ArborDay 2009/01/29 09:20 #

    이해합니다. 저는 그녀만큼 강하지 못하거든요.
  • 나무피리 2009/01/28 17:03 # 답글

    이 영화가 제게는 영화 외적으로 무척 슬픈 일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영화인지 더 궁금해요.
    보시고 밀양이 떠오르셨다고 하니 궁금해지네요. 좀 진정되면 그때 보러가려고 했는데, 얼마나 걸려있을지를 생각하면 또 금방 가야하는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마이밸리가 이 글을 먹어버렸나봐요, 영화밸리에서 보고 들어왔어요^^
  • ArborDay 2009/01/29 09:22 #

    흠,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더 이상 마음 아프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 영화를 볼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나무피리님의 몫일테지만, 팁을 드리자면 [체인질링]은 극장에 그리 오래 걸려있을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그나저나 어째서 이 글을 마이밸리가 먹어버렸을까요?? 그 탓에 프라이버시 설정을 다시 했답니다. 달라진건 없었지만, 한rss에 기존글들이 새글로 뜨더군요. ^^;;
  • 연주 2009/01/28 20:23 # 답글

    어제 이거 보러 나들이 했는데... 뭥미... 상영하는 극장이 왤케 없는지 ㅠㅠ 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늦고 해서 결국 못봤어요;;;
  • ArborDay 2009/01/29 09:23 #

    헐,,, 이 작품도 그리 상영하는 곳이 없습니까?? ^^;;
  • 우노히카 2009/01/28 21:29 # 삭제 답글

    18세라 못보고 대신에 우ㅓ낭소리를 봤었죠...
    생각보다 사람이 엄청 많아서 맨 앞줄에서 봤지만 감동 ㅠㅠㅠ
    체인질링 정말 보고싶어요!
  • ArborDay 2009/01/29 09:23 #

    [워낭소리]는,,, 제가 태어난 고향 바로 옆동네가 배경이라 볼까 싶기도 한데,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네요. [도쿄 마블 초콜릿]도 봐야하고,,,
  • newt 2009/01/29 00:16 # 삭제 답글

    전 '밀양'의 신애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진 않아요.(지극히 날선 잣대를 들이대자면 맞겠지만 ^^) 더럽게 운이 없는 여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는..
    체인질링은 별로 안땡겼는데 오빠 리뷰 보니까 궁금해집니당. @_@
  • ArborDay 2009/01/29 09:26 #

    쿡쿡쿡, 어리석다라는 단어를 날세우고 쓴건 아니고 그저 측은하다 이 비슷하게 사용한 말이란다.
    [밀양]의 신애는 정말 네 말대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 나도 얼마간 그렇고 말이지 - 이라 영화를 더욱 질척거리는 느낌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
    [체인질링]은 졸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 봐도 영화가 참 좋더라. 시간 낼만해.
  • marlowe 2009/01/29 11:01 # 답글

    관객들의 진을 빼는 영화일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 ArborDay 2009/01/29 12:11 #

    하지만 망설이다 놓치기엔 너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 배트맨 2009/01/30 21:20 # 답글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깊은 내공에서 빚어지는 진한 드라마는, 마음을 구석 구석 다 파고들며 흔들어 놓는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도 꽤 만족스러웠어요. ^^

    교차 상영으로 돌게 될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흥행을 하기에는 소재가 너무 무거운 것도 있으니.. ArborDay님이나 저처럼 이 작품을 찾는 관객들에게만 보여질 수 있는 수작이라고 해야 할까요.
  • ArborDay 2009/02/02 10:46 #

    CGV에서도 상영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네요. 소재도 조금 무거워서 몇 번씩 볼만한 영화는 아니고. 그래도,,, CGV가 어디에염이라고 생각하며 자위하고 있답니다. ^^
  • giantroot 2009/02/01 19:31 # 삭제 답글

    다소 많은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능숙하게 조리하는 동림옹의 연출과(140분이라는 긴 시간이였지만 눈을 못 떼겠던데요 0.0), 나약한 인간을 감싸안는 듯한 시각이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가족들하고 함께 봤는데 다들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밀양] 이야기를 꺼내니,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밀양]이 좀 더 좋다고 하셨지만;;)
  • ArborDay 2009/02/02 10:48 #

    104분이 넘으면 지루함을 느끼는 비디오키드에게 140분 동안 눈을 못 떼게 만드는 영화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만, 이 영화가 그랬습니다. 원숙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태도가 조금 겸손한 듯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올해는 나홀로 이스트우드전이라도 해야할까봐요.
  • 물망초5 2009/02/22 23:04 # 삭제 답글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7810

    --> 아고라네티즌청원서명하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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